성장과정

신당동(나중에 신당동 중 일부를 청구동이라고도 부른 곳)

김려성 2011. 2. 2. 17:17

신당동(나중에 신당동 중 일부를 청구동이라고도 부른 곳)  소년시절_청구동 / 성장과정

2011/02/02 17:11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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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동 [新堂洞, Sindang-dong]  
면적 2.53㎢, 인구 8만 0430명(2008)이다.

서울특별시 중구에 속한 동이다. 동쪽은 성동구 상왕십리동, 금호동, 옥수동, 서쪽은 을지로, 광희동, 장충동, 남쪽은 용산구 한남동, 북쪽은 종로구 창신동, 숭인동과 접한다.
동 이름은 광희문(光熙門) 밖에 있는 신당(神堂)을 중심으로 많은 무당들이 모여 무당촌을 이루었으므로 신당(神堂)이라 부르다가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 초에는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이었고, 1914년 고양군 한지면(漢芝面) 신당리(新堂里)에 속하였다. 1936년 경성부 신당정(新堂町)으로 바뀌었고, 1943년 성동구에 편입되었다. 1946년 신당동으로 바뀐 후 1975년 중구 관할이 되었다.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신당1~6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당1동사무소에서는 흥인동(興仁洞)과 무학동(舞鶴洞)의 행정도 담당하고 있다.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는 광희문은 서소문과 함께 도성 안의 상여(喪輿)를 밖으로 통과시키던 문이어서 수구문 밖 신당동 일대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1920년까지만 해도 많은 묘지가 있었고, 일본인 전용 화장터인 신당리 화장장이 있었다.


236번지와 304번지 일대에는 조선시대에 동활인서(東活人署)가 있었다. 활인서는 도성 안의 환자, 특히 전염병 질환을 주로 구호하던 의료기관인데, 서울에 동·서 두 곳에 설치되었다.


청계천 남쪽 다산로 동쪽과 서쪽에 있는 흥인동은 동대문의 이름인 흥인지문(興仁之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1966년 신당동에서 분동되었다. 이 지역에는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공공기관과 상가가 많이 들어섰고, 서쪽에 청평화시장, 동쪽에 황학동시장 및 중앙시장이 있어 번화한 곳이다.


신당동 사거리 남서쪽 왕십리길과 다산로를 끼고 있는 무학동의 이름은 도로교통안전협회 남쪽에 있는 무학봉의 산 이름에서 유래한다. 무학봉은 학이 이곳 봉우리에 와서 춤을 추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당동 지도>